사상 및 철학

선의 목적

사이코 킬러 2009. 9. 29. 00:10

3.선의 목적

 

 선의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자.
선의 목적은 구경성불(究竟成佛)과 장엄정토(莊嚴淨土)에 있다.
구경성불과 장엄정토의 의미를 알아야 적극적으로 참선에

 들어 올 수 있다.
구경성불하면 거리가 멀게 느껴지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인격완성이라 이해하면 된다.
장엄정토 또한 너무 멀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사회안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참선을 하여 인격을 완성해서 사회안정에 기여하겠다고 발심하면 선에 쉽게 접근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선의 목적을 인격완성과 사회안정에 둔다고 분명하게 정리하자.

 

 원각경에서 문수보살이 “ 어떻게 하여 성불하셨습니까? ”물으니 부처님께서 “ 무명(無明)을 끊고 보니
성불이더라.”하시고 “ 무명은 다름이 아니라 착각이 무명이다.”라고 하셨다.

 무엇이 착각인가?
크게 시공(時空)을 착각한다.
동쪽으로 가면서 동쪽을 찾아야 되는데 서쪽으로 가면서 동쪽을 찾으니 착각이다.
탐진치를 버리면 천하가 내 것인데 탐진치를 버리면 내 것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착각이다.
내가 무엇이 되고자하는 확실한 길이 없으므로 착각 속에서 산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뜻을 세운 사람에게 시골 면장을 하라면 안 하듯이 성불하겠다는 인식을 가짐과 동시에 탐욕이 끊어져야 한다.
  
 시간에 대한 개념도 착각한다. 시간에 대해 확실히 이해해야 될 부분이 있다.
지금이 2004년이나 그것은 서기로 본 것이고 부처님 기준으로는 2548년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연도가 달라진다. 올해가 갑신년인데 그 자체가 2000, 3000전 그러니까 지금부터 몇 년 전에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올해가 무슨 해인지 달라진다.

이것도 착각이다.
무슨 띠와 무슨 띠가 만나면 좋고 나쁘고도 착각이다.
그래도 궁합이 왜 맞느냐고 한다면 맞는 것은 만든 대로 되어가기 때문이다.
무슨 띠와 무슨 띠가 못산다고 만들면 그대로 되기 때문이다.
역학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으면 그렇게 되는 수가 있다.
무엇이든 처음 만든 데로 간다. 말은 해 논 데로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벗어나야지 거기에 메이면 안 된다.


 장자에 “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명위지이연(名爲之而然)”란 말이 있다.
도행지이성은 도는 수행하면 이루어진다, 길은 다니면 만들어진다는 뜻이고

명위지이연은 이름은 그렇게 부르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세상의 기준을 언제 어디에 또 누가 세웠느냐에 따라 세상은 좌우된다.
 
 사회안정을 시키는데 어떻게 시켜야 안정적이 되는가?
문화를 향상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노자가 권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 수박(守朴) ”이니 박이 소박할 박, 통나무 박의 뜻이 있으니, 소박한 것을 지켜라인데

원래는 통나무를 쪼개지 말고 지켜라의 뜻이다. 아름드리 나무로 그릇을 만들려면 나무를 쪼개야 된다.

그러므로 통나무를 지켜라는 것은 소박한 것을 지키라는 뜻이다.
 통나무가 안 깨진 나라가 티벳이다. 티벳에 가보니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나 갔다오면

문명이 발달한 다른 나라 보다 티벳만 머릿속에 남는다.
마음에 감화가 생기는 이유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벳의 수행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숫자의 스님들이 자기를 위하여 수행에 전념하고 사회회향을  하지 않는 점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을 바꾸어야한다. 사회를 위하여 자기를 버려야 한다.
내 공부가 더디어도 세상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

정신적으로는 향상되고, 현실적으로는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환원에 신경 쓰기 바란다. 자신을 외형적으로 향상시키려는데 급급하지만 않아도

우리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언제나 늘 꾸미지 않는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 보자.


선의 목적이 인격완성과 사회안정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이제부터는 안으로 향상되고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 보겠다고 발심해 보자.

 

 참선은 어떻게 해야 옳은 방법일까?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를 가지고 올 때 선을 중심으로 가지고 왔다.

그러나 달마대사에 의해 전래된 선은 계속 유지되면서 중국인에 맞게 변화가 되어갔다.

참선이 일반인에도 알 수 있게 자리잡아진 것은 마조도일 선사 때부터이다.
육조 혜능선사 제자 가운데 남악 회양선사가 있었는데  그 문하에 마조 도일선사가 있었다. 
회양선사에게 가서 마조 스님은 참선을 하였다. 마조 스님은 늘 좌선을 하였다.

회양선사는 좌선하는 마조 스님 앞에서 벽돌을  갈았다. 마조 스님이 궁금하여 “  스님 벽돌을 갈아 무엇하시렵니까?”하고 물으니 회양선사는 “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니 마조 스님이 “ 벽돌을 간다고 거울이 됩니까?”하고 물으니

“앉아서 참선한다고 어떻게 부처가 되겠느냐?”하고  회양선사가 반문했다
말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쳐주려는 회양선사의 가르침이 감화를 준다.

 

 회양선사의 가르침은 무엇이 공부이고 참선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
마조스님은 회양선사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방향의 참선방법이 선적(禪的)이 되어 이 때부터 조사선이 나온 것이다.
마조스님 때부터 참선하는 방법이 진일보하고 향상되었다. .
부처님 당시의 선과 마조도일의 선이 다르다. 그 방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남악회양 선사에게 있다.
부처님께서 제시해 주신 여래선이 계속 유지되어 오다 회양선사 문하의 마조스님에 이르러 조사선으로 진일보 한 것이다.
조사선(祖師禪)은 마조(馬祖)의 조(祖)를 따서 불려진 것이다.

 

 참선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 화두참구 "이다.
화두참구가 조사선의 핵심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문제인 화두를 주어서 참구하게 하는 방법이다.
문제를 주어서 풀게 하므로 빠른 방법이 된다.
화두참구가 가장 빨리 참선을 성취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간화선(看話禪)이다
예를들면 “ 나는 무엇인가?” “ 이몸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등의 문제를 가지고 참구하는 것이다.
조사선의 특징이 화두로 모아진 것은 송나라 때부터이다.

 

 화두는 의식을 차단시키고, 5관을 차단시키고 차단 된 그 속에서 스스로 뚫고 나오게 한다.
5관을 가지고 하는 것과 5관을 차단시키는 것이 여래선과 조사선의 차이이다.
5관을 차단시키고 화두를 풀고 나오면 인가를 주었다.
5관이 차단된 상태에서 뚫고 나오는 것이 간화선이다.
[ 좌선의 ]는 이 간화선을 하는 방법이다. 간화선을 수행하는 수칙이다.    .
  

 

한메일넷 이름표

'사상 및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에 관하여....  (0) 2009.10.06
내가 만약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이유  (0) 2009.10.06
나에게 있어 철학이란   (0) 2009.09.24
장자와 노자의 철학  (0) 2009.09.16
인도 철학 학파에 대해서....  (0) 2009.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