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및 철학

석가의 깨달음......

사이코 킬러 2009. 8. 7. 10:16

석가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1. 머릿말

이 책에서 필자는 석가가 깨달은 사람의 전범임에는 틀림없으나, 우리가 꼭 석가를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예를 들면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주장과는 정면 상반되는 주장이다. 그래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지만, 석가는 다만 그가 가르친 내용을 따르라고 충고할 뿐이다. , 불교는 석가를 통하지 않고도 -다른 스승을 통하거나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특성에 의해 불교는 인도에서 비전통파로 분류된다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는 학파적 구분으로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6파 철학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비 전통파가 있는데 불교는 자이나교와 함께 이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비 전통파이다. 여기서 전통파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을 탐구의 대상으로 논의 될 때는 무신론 적이지만, 브라흐만을 창조주이자 절대신, 인격신인 이슈바라로 논의 될 때는 유신론 적이다. 하지만 불교는 그 시작부터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비 전통파로 출발 하였고 궁극적 실재와 자재신을 부정하였다. 오직 인간의 경헌과 일치하는 것만을 진리로 인정하였을 따름이다. 오늘은 이러한 석가의 깨달음을 논의함으로써 불교는 종교인가? 혹은 석가는 종교인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풀어가 보자.

그렇다면 석가는 무엇을 깨달았으며 왜 깨달으려고 하였을까?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과 더러움이 없는 안온의 열반을 얻기 위해서 였다. - 중아함경 권제 56 <라마경>


2.
석가는 어떻게 깨달은 것인가

석가의 깨달음의 특징

①첫째, 석가는 어느 정도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노병사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 영원한 행복, 절대적 기쁨을 추구한다.

 

②둘째, 석가는 죽은 다음의 열반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 속에서 영원한 행복을 찾는다. 그가 선정주의와 고행주의를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③셋째, 우리는 흔히 중도, 중용, 중관 등을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태로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중용은-필요할 때면- 반드시 극단으로 나가고, 그 일이 끝난 다음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석가에게 있어서 중도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극단적인 쾌락과 극단적인 금욕을 직접 실천해 보았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중용이며 중도인 것이다

석가의 이런 중도사상은 초기 경전에 설해진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에 정착되고 ,이 연기설은 무아론과 무기론에 잘 나타나 있다.

①십이연기설 : 모든 중생이 업력에 의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끊임없이 생사윤회하는 양상을 12단계로 나누어 관찰한 것이 십이연기설이다. 석가는 우리 인간에게 괴로움을 일으키는 갖가지 조건을 12갈래로 이루어진 인과의 연쇄로 분석하였다. 이는 석가의 깨달음의 본질이다.

-연기(緣起)?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고,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기에 저것도 멸하는 것이다'라는 석가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진리.

 십이연기설의 가장 핵심적인 뜻 : 인간의 죽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서 연기 한 것임을 발견한 것이다 [불교학 개론 中에서]

 

②무아론이란 문자 그대로 영원한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가아를 진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로써의 나, 자아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아는 영원하고 단일한 실재가 아니라 다만 그 같은 경험을 통해 확인되는 가설적 존재일 뿐이다. 후기 불교인 설일체유뷰에서는 이에 대해 인간의 삶은 과거에서 현제, 현제에서 미래의 생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그것은 영속적이고도 단일한 자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번뇌와 업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우리에게는 몸과 다른 본질적 자아가 존재하며 이것을 무아라고 한다. 이러한 무아는 형태가 없는 생명에너지로서 영원히 소멸되지 않으며 이것을 공이라고 한다. 인간의 육체는 죽어서 없어지지만 무아는 윤회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에서 욕심과 탐욕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무아론이다

 

③무기론이란 비현실적인 형이상학의 문제에는 정확한 답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초월적이고 영속적인 실재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은 다만 현실의 초라함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불과할 뿐, 우리는 경험을 초월하는 그 무엇도 알 수 없으며,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3.석가는 무엇을 깨달은 것인가?

이 질문에 학자들은 대개 사성제설로 답변을 시도한다. 사성제란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이다.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란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한다. 사성제는 일체가 고통이라는 고성제, 고통의 원인을 밝혀주는 집성제, 고통을 없애줄 수 있다는 멸성제, 고통을 없애주는 길을 제시한 도성제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 고성제는 치료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고

둘째, - 집성제는 그런 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

셋째, - 멸성제는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선언

넷째, - 도성제는 구체적으로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을 제시

 

불교는 이렇듯 원인을 분석하여 제거하는 논리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이야기 한다.

필자는 이를 예로 들어 불교가 다른 종교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볼 때 ‘가장 논리적인 종교’ 혹은 ‘이론과 실천을 가장 잘 조화시킨 종교’ 라고 말하고 있다.

 

석가의 깨달음- 육하원칙으로 정리

 

①첫째, 누가 깨달음을 얻었는가? 물론 석가라는 자연인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석가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었으며, 불교 교리에 의하면 석가 이전에도 수많은 깨달은 불타들이 존재했으며, 우리도 동일하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불교의 보편성이 있다.

 

②둘째, 석가는 언제 깨달음을 얻었는가? 그는 사선정(四禪定)을 체험한 다음에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서 사선정이란 욕계를 떠나 색계에서 도를 닦는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의 네 단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네이버 벡과사전) 불교에서 해탈을 이루는 마지막 과정을 보면 깨우침 선정의 상태에 따라 사선근의 단계의 다음으로 사선정과 멸진정이라는 단계가 있다. 성자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사선정의 단계를 반듯이 거쳐야 하며 여기에 일체의 번뇌를 떨쳐 버려야하는 멸진정이라는 마지막 단계를 지나야만 한다.

사선정 단계는 정도와 외도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이 두 과정을 함께 닦아나가야 하지만 멸진정의 단계는 오직 정도만을 닦아가는 하늘 자리로 이 단계를 꼭 닦아야 만이 성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③셋째, 석가는 어디서 깨달음을 얻었는가? 앗사타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그 나무는 보리수로 불리운다. 보리(菩提)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보디(Bodhi)를 음역한 말로 깨달음이란 의미이다. 석가는 인도인들이 임서기에 들어 숲에서 수도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숲에 들어가 수행하여 깨달았다. 인도인들에게 숲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산()과 같은 의미로, 일반적으로 속세를 떠난 곳을 뜻한다.

 

④넷째, 석가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괴로움과, 괴로움의 일어남과, 괴로움의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인 사성제를 깨달았다. 인간의 인생은 기본적으로 괴롭다. 인간의 경험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즐거운 경험과 괴로운 경험,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경험이 그것이다. 괴로운 경험은 그 자체로 괴로우며, 즐거운 경험은 그것이 상실될 때 괴롭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경험에도 무상의 괴로움이있다. 인간 삶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따라서 무상하다

따라서 인간은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이해해야만 괴로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괴로움의 원인도 또한 알아야 한다. 더욱이 괴로움의 소멸을 얻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진정한 소멸이 무엇인지에 대한 앎도 따라야 한다. 결국, 괴로움의 소멸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한 앎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사성제에 대한 앎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석가를 깨달은 이라고 하는 것이다.

 

⑤다섯째, 석가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가? 당시 인도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일반적인 수행 방법에 따라 숲에 들어가 고행을 시작하였다. 마음을 제어하고, 죽음에 직면할 정도로 감식과 단식하였으며 호흡을 멈추는 등 감각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 순수 영혼으로 실재를 사유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는 진정한 해탈을 얻을 수 없었다. 육체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육체를 완전히 추구하는 쾌락에 반하는 또 다른 극단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고행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이를 포기한다. 그리고 음식을 공양 받아 기력을 차리고 다시 명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다. 석가는 수행을 시작한지 6년만에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초기 불교 이후의 평가에서는 이미 그 이전의 전생에서 지극한 도를 닦았기 때문에 6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이러한 깨달음이 가능 했다고 한다.

   

⑥여섯째, 왜 석가는 깨달음을 중생에게 설하게 되었는가? 자비심, 대자비에서 발로한 것이다. 그는 혼자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자족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수 없었으며, 결국 오랜 심적 투쟁 끝에 그는 그의 교리를 전파하기로 결심 했다. 물론 처음에는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으며, 나중에는 수많은 군중이 그를 따라 왔을 때 그는 진리의 교리가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가르쳤다. “어두운 세상에서 나는 끝없이 북을 치리라!

 

4. 깨달음은 어떻게 오는 가

석가의 깨달음은 물론 석가 개인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석가 이외에 모든 사람도 성취할 수 있는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이 깨달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오는가?

돈오 점수에 대한 간명하고 좋은 자료첨부

 

5. 불교는 무신론인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모든 종교를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절대적인 인격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무신교로 분류하고,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에 대한 믿음이 종교의 필요충분조건 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종교적 특성일 뿐, 이를 다른 모든 종교에 대입 할 수 없다. 불교를 포한한 인도 사유에 있어서 믿음이란 수행을 통한 존제본성의 통찰에 대한 결과로써, 종교의 최고의 가치이자 목표인 구원을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통찰에 의해 구한다.

신의 존재는 경험으로 입증하거나 반증 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신의 존재나 비존재는 진위의 문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불교는 석가나 불타를 믿는 유신론으로 볼 수도 있고, 철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무신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닌 신의 존재나 비 존재에 대해서 논의 할 필요가 없는 비신론 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교의 근원인 석가가 깨달음 자체가 그 당시 종교인 베다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으며  궁극적 실재와 자재신을 부정하였다. 오직 인간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만을 진리로 인정하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인도인들이 절대적 실재인 브라흐만을 인격신 이슈바라로 모시고, 진리를 깨달은 성자들을 신격화 하여 모신 바가바드기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은 그만 신의 영역으로 넘기고 깨달은 이들을 신격화한다. 그리고 그 신들을 찬양하고 제사를 올림으로써 그들이 깨달음을 내려주길 바랬다. 석가의 가르침 또한 결국 석가 입멸 후, 초기 불교의 이성에 입각한 경험적 지혜는 석가라는 인간의 신격화로 변하는 양상을 띈다. 하지만 이는 석가가 전한 진리와 다른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불교는 비신론이라고 믿는다.

불교는, 특히 원시 불교는 전형적인 비신론의 종교라고 저자는 믿는다. “신은 존재하는가?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이런 문제들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욕망의 화택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불교는 무신론도 유신론도 아닌 비신론이다”   

하지만 석가가 진정으로 이루려고 하였던 것은 자신이 신으로 모셔지는 것도 아니고, 신으로 모셔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신이든 신이 아니건 중요하지 않다고 논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신에 의해서도, 혹은 신에 의하지 않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이성과 경험으로 사유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석가의 가르침이다

 

 

 

참고서적

종교철학 11강좌. 황필호 지음. 철학과 현실사. 2006

인도철학과 불교. 권오민 지음. 민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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