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및 자기 칼럼.....

재미삼아 읽는 무술계 비화(2)

사이코 킬러 2011. 5. 15. 14:26

저번에 이어서 이번에도 쓰도록 한다.

 

1.이소룡과 엽문은 불화가 잦았다... 이 얘기는 엽준이 본 이소룡과 엽문에 대해 쓴 저서가 있는데 읽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의견대립을 했던것은 사실이다... 훗날 이소룡이 배우로써 성공하고

 

표면적 스승인 엽문을 뵈면서 아들인 브랜든 리를 안았던 사진이나 장례때 온것은 맞지만 기본적인 사고

 

방식에 차이에서 오는 대립을 피할수 없었나 보다.... 이때 이소룡은 미국에서 홍콩으로 돌아왔을 시기였고

 

미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시기이기도 했고 미국물(?)을 많이 먹은 탓에 보수적인 엽문과는 의견 대립이

 

잦았던게 아닌가 하는데... 일례로 엽문에게 영춘권의 치사오 동작을 비디오 카메라로 담아도 되냐고 했을때

 

엽문은 단호히 거절하게 되는데 이때 이소룡은 미국에 있는 자기 제자들에게 소개를 하려고 한 의도외에는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영춘권은 이소룡이 영화등을 통해 알려지는데 사실 이때 치사오 영상을 찍어서 이

 

소룡의 제자들에게 보여줬더라면 더더욱 빨리 해외에 알려졌지 않았을까 한다.....

 

2. 최영의 총재는 실전 공수도 교범의 내용과 예전에 집필한 정통 태권도 교범과 내용이 비슷하다.... 이는

 

한때 최홍희 장군의 권유로 인해 태권도쪽으로 이전하려고 했을때 썼던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리고 당시

 

에는 가라데와 당수도가 혼용이 되던 때이기도 했다고 하며 반일감정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실전 공수도

 

교본을 가지고 있는 나로써는 이 부분을 보면서 역시 시대의 정황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기는 하지만 역시

 

씁쓸한 마음을 감출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업적에 대해서는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이 부분에 대

 

해서는 안고 가야할 숙제가 아닌가 볼 뿐이다.. 사실 제3자인 나의 입장에서 이러쿵 저러쿵 왈가왈부 할건

 

아니지만 한때 극진을 좋아했던 나로써는 이러한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