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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사상.....

사이코 킬러 2009. 10. 6. 19:23

 

 

[원문]- 백서본

 

將欲翕之 必姑張之

장욕흡지 필고장지

 

將欲弱之 必姑强之

장욕약지 필고강지

 

將欲去之 必姑與之

장욕거지 필고여지

 

將欲奪之 必姑予之

장욕탈지 필고여지

 

是謂微明 柔弱勝强

시위미명 유약승강

 

魚不脫於淵

어불탈어연

 

國利器 不可以示人

국이기 불가이시인

 

 

[해석] 

 

막 움추려들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동안 크게 확 펼치게 되며,

 

막 쇠약해지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동안 드세게 강해지고,

 

막 떠나버리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동안 더불어 친하게 함께 지내며, 

 

막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동안 베풀어 주는 것이오.

 

 

이를 일러 미묘한 움직임을 알아채는 예지(叡知)라 하는데, 

(이것을 알고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면서도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길 수도 있소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을 역이용한다면)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외다. 

 

이러한 나라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수있는 미묘한 수단(지혜)은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공개되서는 아니되오.  

 

[해 설]

이 36장은 도덕경 중에서 가장 진위(眞僞) 논란이 많은 장입니다.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유명한 노자도덕경 연구서들은 이 36장의 내용이 고도의 권모술수를 이용한 통치술이라고 한결같이 해설하고 있으며,현대의 해석서들도 비슷하게 해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노자도덕경의 이문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병가(兵家)와 법가(法家)라고 하는데, 이와 비슷한 문장이 <韓非子>의 설림상(設林上)편과 <전국책(戰國策)>, <주서(周書)><손자병법>등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중국의 일부 주석가들 중에서 이렇게 권모술수요령을 노자가 직접 가르쳐 줄리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결국 나중에 노자의 원본에 가깝다는 곽점본이 발굴되어 조사해 본 결과 다행히 곽점본에는 이36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노자도덕경 주석가들은 이장을 한비자나 손자병법과 비슷한 권모술수적인 통치술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장이 비록 백서본에서 새로 삽입된 것이라 할지라도, 백서본의 도덕경 편집자 역시도 곽점본의 원본 도덕경에 못지 않은 무위자연적인 도에 입각해서 도덕경을 편집했을 것이며, 그러한 기본적인 관점에서 면밀하게 문장을 분석해 본 결과, 기존의 도덕경 주석이나 해석과는 정반대로 해석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36장의 내용을 보는 관점을 무위자연적인 道의 일원화 입장에서 파악해 본 결과 기존의 권모술수적인 내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수가 있었습니다.

 

기존 해석서들 중에  권모술수적인 해석 한가지를 예시해 보면,

<장차 상대를 오그라뜨리려거든 우선  상대가 펼치게 해주고,

장차 상대를 약하게 하려거든 우선 강하게 만들며,

장차 상대를 제거하려거든 우선 함께 동조하고,

장차 상대를 빼앗으려거든 우선 베풀어 주어라.

이를 은미한 지혜라하니,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법이네.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면 안되는 것처럼

국가를 다스리는 이 수단을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되네.>

이렇게 약하고 부드러운 척 겉으로는 가면을 쓰되, 상대를 칠 기회가 있으면 무차별하게 상대를 정복하라는 전형적인 권모술수의 모범 답안인데, 이것은 도저히 무위자연의 도를 주장하는 노자의 말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이 36장의 기존 해석내용 때문에 노자도덕경의 원래 이미지가 손상될 뿐 아니라, 과연 노자가 도인이냐, 아니면 단순히 왕의 정치 보좌관이나 정치 부로커냐 ,등의 논란이 있을 수가 있고, 도덕경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장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해석해 본 결과 과연 위의 권모술수적인 내용과는 다르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장은 비록 백서본에서 새로 덧붙힌 문장이지만,

무위자연적인 도의 측면에서 절대 한발짝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은 내용입니다.

즉, 권모술수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러한 통치술로 이문장이 이용될 것을 예상해서 경고문까지 집어넣어 후세에 잘못 변용하지 않도록 주의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덕경 역사이래 한비자 주석부터 왕필이를 위시하여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장을 권모술수적인 통치술로 해석을 해 온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경을 보는 관점이 이원화적인 인간관계로 해석을 했기 때문인데,

그러나 도의 일원적인 무위자연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야 옳바른 가치를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자연주시적인 도의 관점에서 이장을 해석하면,

자연의 여러 현상 들 중에서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들어 날 수 있는 징후를 미리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요령을 일러준 내용이며,

이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직접 행동으로 활용하지 말고, 일단 주시만 하고 알아차리되,미리 나라를 지키는데 대비책을 세우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즉 앞의 네문장은 <상대방에게 나약한척 가면으로 위장하여 기회를 틈타서 상대방을 제압하라>는 내용의 문장이 절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현상으로부터 관찰된 변화의 움직임을 인간사회의 변화조짐에 적용하여 비유적으로 묘사한 내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간단히 기술해 보면 < 막 움추려들려고 하는 것은 잠깐동안 확 펼쳐지며,막 쇠약해지려고 하는 것은 잠깐동안 강해지고, 헤어질려고 하는 것은 잠깐동안 친하게 지내며, 뺏을려고 기회를 노리는 것은 잠깐동안 베풀어준다.>라는 내용으로써 자연과 인간사회의 어떤 현상이 변화하기 직전에 그후에 변할 징후를 미리 알아차리라는 요령에 대하여 가르침을 준 내용입니다.

즉 자연 현상의 특별한 변화 양상에 대해 관찰한 결과를 인간사회 변화에 적용하여  미리 예견하는 요령인 것이죠.

따라서 <~무엇을 어떤 요령으로 이렇게 하라>하는 행동을 지시하는 내용이 아니라,

< 이런 징후가 나타나는 것은 그와는 반대로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라고 주시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미묘한 지혜를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직접 행동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으면, 같은 연못의 물고기가 되어, 그러한 싸움판의 좁은 연못안에서 결코 벗어날 수없다고 경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즉, 손자병법과 유사한 기존의 해석 내용같은 의도적인 행위를 하면, 더 이상 그 투쟁과 갈등의 비좁은 연못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將欲翕之 必姑張之

장욕흡지 필고장지

將;장차,문득,만일,대부분, 대저(대체로),막~하려고 한다.欲;하고자하다,~할 것같다.바라다.

翕;합하다,모으다,거두다.당기다.오그라들다,움추려들다.

必;반드시,틀림없이,오로지.姑(백서본 주석) ;잠시,잠깐동안,固(왕필본);진실로,거듭,굳다.

張;베풀다,넓히다,기세가 오르다.

 

將欲翕之 ; 막 움추려들려고 하는 것은,

必姑張之 ; 틀림없이 잠시 확 펼치게 되고,

<將>은 '장차,만일,대부분,대저',라는 여러가지 글자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막 ~하려고 하다>또는 "만일, 문득,대체로"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欲>자는 '~하고 싶다',라는 능동적인 바람의 경향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 ~ 될것 같다>라는 수동적인 경향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將欲>은 "막 ~하려고 할 것 같다"라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翕>은 '합치다,모으다'라는 의미로써, 한군데로 "오그라진다" 또는 "모아진다", "줄어든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여기서는 <오그라진다>또는 <움추러든다>라는 수동적인 의미로 해석됩니다. 

將欲翕之 : <막 오그라들려고 하는 것은>, 또는 <만일 움추릴 려고 하는 것은> 으로 해석이 됩니다.

 

<必>은 <반듯이> 또는 <필히>라는 의미죠.

<姑>는 원래 백서본 원문에는 옛<古>자로 되어 있읍니다만, 옛 백서본 주석가들이  시어미<姑>의 빌린 글자로 해석을 했읍니다.

이 시어미<姑>는 시어머니라는 뜻과 함께 <잠시> 또는 <잠깐동안>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한편 왕필본에서는 굳을 <固>자로 되어 있는데, 해석은 백서본 해석의 <잠시동안또는 일단>으로 대개 해석들을 하고 있읍니다. 

왕필본의 <固>는 <姑>의 빌린 글자로 보는 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석이 제대로 안되게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백서본 빌린글자의 <姑>를 채용하여 <잠시동안>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張>자는 <베풀다> 또는 <크게 기세가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必姑張之 : <틀림없이 잠시동안 펼쳐진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막 움추려들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확 펼치게 된다>

이 말은 평범하지만, 자연의 특수한 현상을 그대로 묘사한 말입니다.

어떤 자연현상이 갑자기 변화하기 직전에는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는 서서히 어떤 변화징후가 나타나기 시작되는데,

이러한 미세한 징후를 사전에 알아차리는 예지가 있으면 나라를 지키는 지혜로서 유용하다는 것이죠.

 

자연에서 어떤 현상이 갑자기 변하려고 하면, 지금 그 보이는 현상과는 전혀 다른 반대 현상이 불쑥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예기치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면 분명히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서서히 꺼져가는 불은 꺼지기 직전에는 가장 밝은 불빛을 발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리현상 중에는 전기회로의 "과도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흐르고 있는 전기 회로를 갑자기 끊으면 아주 짧은 순간에 수백배의 전류와 전압이 순간적으로 발생하여 스위치 전극사이에 강한 스파크 불꽃이 튀는 것이 바로 이 과도현상이죠.

또 거시적인 뉴턴 운동물리학에서는 운동하는 물체는 항상 그 운동력의 반대되는 반작용을 받게 되는 것이죠.

그 반작용이 실제로 드러나서 보이지 않지만, 무한하게 작용되어야 할 힘이 어느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된다는 그 자체가 바로 반작용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물체의 경우도 식물을 예로 들어 보면, 깊은 산속에서 저절로 자라는 소나무가 갑자기 솔방울 열매를 유난하게 많이 맺으면, 그 소나무는 죽을 때가 가까이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평소 때와는 다른 성격이나 자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모든 자연현상인 무생물,식물,동물,인간사회 할 것없이,어떤 변화가 있는 과도기에는 틀림없이 <역방향>의 반사작용 또는 과도현상적인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사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테 평생 구두쇠 노릇만하던 아주 지독한 짠돌이 부자영감이 죽기직전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백팔십도 변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든가,너그러워진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습니다.

 

이렇게 노자는 이러한 현상들을 직감적으로 예리하게 미리 알아차려서 사전에 위난에  대비하라는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대부분의 해석서들은  이러한 수동적인 관찰에 의한 예지의 깨우침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전혀 무시하고,그와는 정반대인 권모술수적이며 의도적인 행동으로 상대방을 정복하는 수단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해석한 내용들을 한가지 예를 들면

< 상대를 오그려트리고 싶으면, 우선 크게 펼치도록 하고,

상대를 나약하게 하려면, 우선 상대를 강하게 유도하며,

상대를 제거하려거든, 우선 함께 동조하고.

상대를 빼앗고 싶으면,우선 상대에게 베풀어 주라>

 

이런 해석내용에서 상대라거나 적이라고 지칭하는 글자는 본문에 하나도 없고,

<之>라는 후치사(대명사)는 상대방이나 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관계의 일반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대명사일 뿐입니다.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상대방을 은밀하게 제압하는 권모술수적인 해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내용이 된 것은 한 인간 또는 나라가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이기적인 잔꾀를 쓰는 요령으로, 이원적이며 개체적인 투쟁적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지,

노자도덕경의 기본 주제인 "무위자연적인 전체성"의 관점에서 해석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대의 노자 주석서나 해석서들이 한결같이 손자병법이나 한비자같은 정치책략서에나 있을 법한 내용으로 해석한 것은 고대부터 노자에 대해서 주석하고 해석한  것을 검토없이 그대로 답습하여 인용했기 때문인데, 그 최초 원인을 추적해 보면 바로 한비자로부터 비롯된 것 같습니다.

 

노자를 최초로 주석한 것은 공교롭게도 한비자(?~ bc234년)라고 하는데, 한비자는 순자에게서 교육을 받은 법가계통의 전국시대 사상가이며,그의 주된 사상이 국가는 반드시 형벌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법가계통의 책략가 또는 지배계급을 위한 국정운용의 사상이념가이기도 한데, 노자의 사상을 국가정치에 일부 적용하여 무위자연의 법칙을 권모술수적인 통치술로 응용하려고 한 사람이지만, 실제적으로 노자의 무위자연적인 도를 깊히 이해한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비자의 주석이 바로 위의 "상대를 제압하려면, 우선 상대와 친해져라"이런 식의 권모술수의 방식으로 주석하고 해석을 한 것을 오늘날까지 학자들이 그대로 아무런 검토없이 답습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방법은 이기적인 목적성과 상대성의 관점에서만 해석한 것이며, 본문자체는 이러한 권모술수를 가르쳐 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변화되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러한 현상이 인간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므로, 이러한 세밀한 관찰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유지하는데, 사전에 대비하는 지혜로서 사용하도록 충고해주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읍니다. 

 

그렇지 않고 이지혜로 남을 해치는 권모술수나 잔꾀로써 사용하면 결국은 자신도 우물안 물고기가 되어 권모술수의 희생자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장의 말미에 이러한 의도적인 행위를 경고하고 있는 구절까지 삽입할 정도로 아주 주도면밀하게 전체문장이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지혜를 악용하는데 따른 부작용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만,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비자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손자병법에 나오는 문장과 유사하게 권모술수적이며 의도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해석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將欲弱之 必姑强之

장욕약지 필고강지

弱;약해지다.쇠약하다. 强;강하다.

將欲弱之 : 막 쇠약해지려고 하는 것은

必姑强之 : 틀림없이 잠깐동안 확 드세게 강해지며,

 

이 문장도 역시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연적인 현상에 비유해서

인간들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묘사한 것입니다.

즉, 약해지려고 하는 것은 그 약함을 숨기기 위하여 더욱 기세가 강해져 보이는 징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노자도덕경에서는 무엇인가를 "~하라" 라는 문장으로 해석하면 오역이 되기 쉽습니다.

대체로 무위자연적인 "저절로 그러한 것"을 묘사하기 때문에 항상 관조자적인 입장으로 읽어야 하죠.

따라서 대부분 노자도덕경은 수동적인 관조자 입장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사그러져가는 덤불의 불씨는 마지막 꺼질 때는 더욱 밝은 빛을 낸다는 비유와 비슷합니다.

어떤 존재가 사그러질 때에 그자체 존재에 대한 미련과 사랑때문에  자기 존재의 마지막 남은 에너지 불씨를 일시에 모두 드러내서 밝히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將欲去之 必姑與之

장욕거지 필고여지

去(백서본):버리다,없애다.떨어지다.與:더불어하다,같이하다,친해지다.

 

將欲去之 ; 막 떨어지려고 하는 것은

必姑與지 ; 틀림없이 잠깐동안 더불어 함께 있으며,

 

<去>는 '버리다,없애다'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뒤의 <與>자와 반대되는 뜻인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해석을 했읍니다.

<與>는 "더불어 같이하다,친해지다"라는 뜻입니다.

<막 헤어지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깐 친하게 함께 지내는 것 처럼 위장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죠.

예를 들면, 서로 사랑했던 남녀 중에 남자가 더 좋은 다른 여자를 사귀던가,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고 싶으면, 일단은 작전상 기존에 사귀던 여자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든가, 유별나게 평소하고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음흉한 여우는 자기의 긴 꼬리를 안 보이게 하려고 철저히 조심하고 가식적인 위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한 위장술이며, 자연스러운 자기보호본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사람의 애욕문제에 있어서 이런 의도적인 가식행위는 사회규범상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말하고 있죠.

노자는 이러한 미묘한 현상을 지켜보는 예지(叡知)를 가지고 사전 대비하라는 것이지, 다른 해석서들처럼 "상대와 헤어지려거든, 우선 같이 친하게 어울려라"라는 의도적인 가식과 음흉한 잔꾀를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그런 행동은 우물안 물고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위일 뿐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반대로 그 희생자와 함께 말려들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부분에서 왕필본은 글자를 좀 바꿨습니다.

왕필본-將欲廢之 必固興之; 막 없었질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잠시동안 흥성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석은 -상대를 없애려고 하면 필히 잠시동안 흥성하게 하라-라고 해석들을 했습니다.

백서본-將欲去之 必姑與之 에서 去->廢, 與->興,으로 바꾸었습니다.

왕필본에서 왜 글자를 바꿔치기 했나 가만히 들여다 보니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해석을 의도적인 행동으로 하기 위해서는 백서본의 문장으로는 의미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죠. 즉 백서본으로 "장차 상대를 제거하려거든 잠깐동안 베풀어주어라" 이렇게 권모술수행위로 해석을 하려니깐 앞뒤 의미가 좀 부조화되어 어울리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아예 글자 두개를 바꾸어서 "장차 상대를 망하게하려거든 일단은 상대를 흥하게 하라"이렇게 앞과 뒤가 반대되는 의미의 글자로 바꿔치기 해서 미리 의도된 해석문을 맞추어 버린것 같습니다.

 

將欲奪之 必姑予之

장욕탈지 필고여지

奪;빼앗다.잃다.없어지다 予;주다,승인하다,인정하다.

 

將欲奪之 : 막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必姑予之 : 틀림없이 잠깐동안 베풀어 주게 된다.

 

<막 빼앗으려고 노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겉으로는 잠깐 동안 베풀어 주는 척을 한다>는 뜻입니다.

곤충이나 동물의 세계를 관찰하면 이러한 현상은 흔하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낚시밥인 미끼를 이용하여 이끌어 놓고 잡아 먹는 동물이나 곤충들이 많죠.

인간사회도 이러한 자기 목적을 숨기고, 상대방을 낚시밥으로 유인한 뒤에 경계가 풀린 틈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예가 많습니다.

노자는 이러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음흉한 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그징조를 미리 알아차리는 지혜를 지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행동으로 상대방을 정복하라는 음흉한 계략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是謂微明 柔弱勝强

시위미명 유약승강

시위; 이것을 소위 ~라고 한다. 미;작은,보이지 않는,은밀한,

柔:부드럽다,순하다,연약하다. 勝;이기다. 强;강하다.

 

是謂微明 ;이것이 소위 보이지 않고 은밀한 것을 보는 지혜인데,

柔弱勝强 ;(이것을 알면) 부드럽고 약한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기게 된다.

이렇게 외부로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은, 어떤 유별난 징조를 보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나 충격을 미리 예견하는 것을 '미묘한 밝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미묘한 밝음"이란 좀 다른 말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내는 지혜 또는 예지(叡知)"를 말하며, 아주 은밀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을 꿰뚫어보는 관찰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묘한 것을 알아채는 예지를 갖추고 있으면,

겉으로는 부드럽고 약한 듯하지만, 이런 예민한 관찰력으로 강하고 억센것을 힘들이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란 한마디로 수동적인 주시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부드럽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을 잘 하는 조화로운 상태를 말하며,

약하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일 뿐이지, 미세하고 은밀한 것을 예견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 억세고 강한 상대를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이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지 할 것은 유약한 것이 강하고 억센 것과 맞붙어서 싸워서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강하고 억센 부자유스러움과 자만감의 헛점을 발견하고 그 힘을 저절로 쓰지 못하게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도 있다"하는 미래가정법으로 묘사한 것이죠.

꼭 이긴다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지혜를 미 알고 있으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오는 "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날 수가 없다"라는 말은 바로 이 지혜를 이용해서 직접 행동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입니다. 

 

魚不脫於淵 國利器 不可以示人

어불탈어연 국이기 불가이시인

魚;물고기, 脫; 벗어나다. 淵; 연못, 利;이롭다,유익하다. 탐내다. 器; 도구,수단,그릇

 

魚不脫於淵 ;(이것을 역이용한다면)물고기는 연못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國利器: 나라를 지키는데 유익한 (전략)정보는

不可以示人 ; 사람들게 보여주어서는 안된다. 

 

이 36장의 모든 문장을 제대로 해석했다 해도, 이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문장을 확실히 이해 못한다면, 이36장의 해석은 노른자 없는 찐계란를 먹는 기분이나 비슷할 겁니다.

노자는 위의 네가지 문장을 앞에 제시해 놓고, 사람들이 틀림없이 이 문장들을 권모술수나 남을 정복하려는 책략술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예상을 미리부터 충분히 예견하고, 여기에 <漁不脫於淵>이라는 경고 메세지를 명확하게 집어 넣었습니다.

 

즉, 위에 열거한 네가지 사례를 자연현상 중에서 변화되려는 순간에 나타나는 특수한 반대징후들을 거꾸로 해석하여, 오히려 그것을 책략으로 이용하여 직접 행동을 시도할 경우는 그 당사자도 결국은 똑같은 권모술수에 말려들 수 밖에 없으므로, 연못안의 물고기처럼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경고문입니다.

그런 상대적인 도구로 사용한다면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가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싸움 행위의 세계 속으로 발을 일단 담구게 되면 연못의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처럼, 상대적인 인과응보의 연속적인 수뢰바퀴의 윤회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속세라는 작은 연못 안에서 사는 물고기는 그곳을  벗어나서 무한한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용이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적성 있는 의도적인 행위와 이원적인 사고방식은 그 테두리를 초월하는 주시자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이죠.

 

노자 입장에서는 그런 상대방의 미세한 변화징후를 면밀히 관찰하여 나라를 유지하는데 난리를 겪기 전에 미리 예견하여 철저히 대비를 하라는 것이지,

직접 그런 권모술수의 잔머리를 돌려가며 행동을 취한다면 결국 상대편과 똑같은 권모술수의 희생자로 전락하여 연못 안에서 맴도는 물고기 신세 같이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적국을 패망시키기 위하여, 잠깐 동안 적국의 힘을 강하게 해줄 때에, 만일 적국이 그런 책략을 미리 알아챈다면, 적국이 강해지자마자 그대로 공격해 올 수도 있는 것이죠.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동물원의 호랑이 사육사가 호랑이와 친하게 되어, 마음 푹 놓고 호랑이 우리에 직접 들어가서 자기 손으로 빵을 먹여주며 귀여워 해 주는데, 호랑이 입장에서는 푸석푸석하게 맛대가리 없는 밀가루 빵 보다는 싱싱한 살코기(손)가 더 탐이 나서 빵을 먹는 척하고는 잽싸게 사육사 손까지 먹어치울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미묘한 지혜를 이용하여 남을 정복하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런 잔꾀를 안쓰는 것만도 못한 것이며, 역으로 당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또 상황이 갑자기 뒤집힐 수도 있으므로, 같은 우물안에서 함께 진흙탕을 일으키며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비자는 이러한 노자의 경고성 문장을 너무 소홀하게 보아서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그 네줄의 문장이 적을 은밀하게 제압하는데 너무나도 기똥찬 아이디여서 활용했는지는 잘 알 수가 없읍니다.

손자병법도 이러한 노자의 무위자연적인 흐름을 일부 응용하여 병술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러한 지혜는 사람이 잘못 활용하면, 아주 음흉하고 흉악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위의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경고성 메세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나라를 유지하는데 유익하고 미묘한 전략정보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공개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묘한 지혜는 마치 자루가 없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적을 공격할 수도 있지만, 칼을 쥐고 있는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러한 미묘한 정보가 일반에 공개된다면, 옳바로 상항을 판단하지도 않고, 남을 해치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만일 공개되면 다른 국가에서 역이용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죠.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국가 안보에 관련된 중요한 전략정보이므로 보안이 철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위의 36장 내용들을 비롯하여 도덕경 전문이 아마도 왕이나 군주의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남달리 독특한 국가운용요령 또는 왕자나 귀족자녀들에게만 특별하게 가르치는 예비지도자 양성교육자료로써 이용했던 내용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듭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보안을 철저히 하라는 <對外秘>경고문까지 삽입된 것 같습니다.

 

이번 36장은 원문 내용은 짧지만, 기존의 해석들과는 차별있는 해석에 대해서 좀상세하게 설명을 붙히다 보니, 전체적인 내용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원래 백서본이 형성된 시기인 전국시대 말기에는 황노학이 전성시대였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이 36장같은 내용의 권모술수적인 정치 통치술이 삽입되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권모술수 내용이 아니라, 위의 해석내용과 같이 자연의 특수한 변화양상을 인간사회에 적용하여 인간사회의 여러가지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여 예지를 키우는 안목을 알려 줌으로써 국가 위난에 사전에 대비하는 지혜를 갖질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실,권모술수적인 통치술로 묘사된 기존의 해석서들도 나름대로 큰 가르침을 주었읍니다.

왜냐하면 "이런 단순한 문장들 조차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이렇게 180도 해석이 달라질 수가 있구나 !" 하는 사실을, 여기서 바로 입증해 보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으니 말입니다. 

기존의 은밀하게 숨어서 의도적인 권모술수를 쓰라는 해석서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서(?), 전혀 반대적인 관점을 가지고 수동적인 관조측면에서 새롭게 해석을 해 보니, 과연 원래 노자가 가르쳐주는 깊은 뜻이 그대로 반영되는 듯한 해석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번에 새로 해석한 것은 수동적인 <관찰 또는 주시>적인 관점이고,

기존의 권모술수로 해석된 것은 능동적이며< 개체의 의도적 행위>를 중심으로 해석된 것이죠. 

도의 기본 자세는 오로지 수동적인 주시자 측면이며,

권모술수 같은 능동적 행위는 상대적이고 개체적인 측면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노자도덕경에 수록된 대부분의 문장들은 道의 관점인 주시적인 관찰묘사로서 해석되어야, 도덕경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심오한 의미를 옳바로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36장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노자도덕경 전체내용에 담겨있는 道와 德의 기본방향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어느정도 조화가 맞추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추석명절,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랜시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한진인-

 

 

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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